Omura Itsu

관심받고 싶어서 예술가가 되고 싶었어요

라고 대충 말 할 수도 없다. 사실이 아니니까.



 예술대학 졸업한다고 아티스트가 되는것도 아니고 대학 안나왔다고 해서 아닌것도 아니고 또 아티스트라고 해서 생계걱정 안하는것도 아니고 아티스트가 뭔지도 모르겠고 (하지만 이건 학교에서 배울것같은 막연한 기대감)


 일단은 단지 내가 무엇인가를 만들어내는게 좋다. 그리고 그게 주목받고 아부당할때 행복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아기일적 부터 혼자 지내서인지 타인으로부터 관심받는게 좋고 “와 너 정말 잘하는구나?” 하고 칭찬받는게 좋았다. 결국 내 반영에대한 칭찬, 나 자체에 대한 관심.

“특별한 어떤 하나”

 뭔가 항상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선 남들보다 뛰어난 사람이고 싶었고 잘 하고싶었다. 그래서 그런 부분에선 집착도 강하고 승부욕도 심하고 필요 이상으로 노력을 쏟곤했다. 학창시절에도 그래서 쓸데없이 수행평가 과제에 시간을 많이 쏟곤했고.
노는 것도 마찬가지다. 남들 다 하는건 하기싫었다. 술먹기가 싫었고 담배피기가 싫었고 어지간해선 어울리기가 싫었다. 물드는것 같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혼자서 공연이고, 레스토랑이고 그렇게 혼자서 겉돌며 다녔다. 어차피 같이 가자고 해봐야 돈 든다고 아무도 안갔지만. 그때는 다들 너무 ‘나이’가 어렸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어쩌면 보편적 다수를 깔보고, 각 집단에서의 관습화된 행동양식을 혐오하고 (예를 들자면 클럽좀 다닌다는 애들은 문신 하나씩 있다거나 더럽게 많은 가죽옷들) 욕하면서 동시에 그 대상들한테 추앙받고싶어하는 이중적이고 이기적인 나였다.

 그래서 결국 관심받고 싶어서 예술가가 되고싶은건 아니고 예술가가 (아니 일단 뭐가 되던지, 어떠한 것이나) 되서 관심을 받고 싶은게 가장 사실에 가까운 표현인것같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경험이 쌓이고 관계가 넓어지며 이러한 바람과 착각이 허물어지고 깎이고, 내가 좋아하고 멋지다라고 생각했던것 역시 결국 그 세가 늘수록 내가 혐오하는 집단화된 양식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걸 깨달을 수록 (혼돈이론이나 프랙탈 구조에서처럼 결국 무질서속의 질서랄까), 스스로가 나도 보통 사람이다 라는걸 깨닫고 자존감이며 동기며 삶의 의지며 바스라진다.

 타인의 마음은 관찰 할 수 없으니 전적으로 나의 경우만 헤아렸을때, 그래도 “生” 이라는것이 바이러스 마냥 놀랍도록 끈질긴 것은 매번 스스로를 유지하기위해 어떻게서든 방어기제를 만들어내려고 발버둥 친다는점이다.
까이고 까여서 가루가되어도 결국 스스로 내가 그걸 주워담아서 새롭게하지않으면 쇼파에 느긋이 누워 감자칩이나 먹는 게으른 돼지들마냥 신에게 전적으로 떠넘겨버리지 않는이상 나 이외에 누가 날 구원하나겠나.
부러진 뼈가 붙으며 더 단단해지는것처럼 가루가 된 자존심이 다시 붙으며  콧대만 높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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